인권과 소수자 이야기
1. 소수자를 보면 인권이 보인다
장애인, 노인, 여성, 빈민 등 전통적인 소수자 집단 외에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40만 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 전체 결혼의 13%가 넘는 국제결혼, 그리고 그 결과로 태어나는 수많은 혼혈아 등 다양한 소수자 집단이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만 보고 일부에서는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며 시민의식이 성숙해가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과연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진단한 목소리일까?
책세상에서 출간한《인권과 소수자 이야기―우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이 시대 청소년들을 위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소수자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기본적인 개념 이해부터 시작해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등 역사적인 소수자 차별 구조를 알아보고, 다문화 사회에 대한 낙관의 이면에 견고하게 존재하는 차별 실태를 점검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제안을 내놓는다. 기존의 소수자와 인권 관련 책들이 관심 있는 일반인이나 전공자를 대상으로 했다면《인권과 소수자 이야기》는 청소년을 위해 본격적으로 소수자 이야기를 풀어낸 첫 시도라 할 수 있다. 어떤 맥락에서 소수자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나의 편견지수는 얼마인지, 우리 사회가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소수와 다수의 개념을 넘어 인권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게 유도했다. 또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글(호주제 존폐 의견서, 병역 거부 소견서, 장애 여성의 글 등)을 실어 우리 사회의 ‘낮은 목소리’를 전달했으며, 보조단을 활용해 생각거리를 제시하고 재미있는 삽화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보완했다.
화교, 혼혈인, 이주 노동자 등의 인종?민족적 소수자를 비롯해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전통적인 소수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나 성적 소수자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 집단을 이야기한 이 책은 ‘우리’가 되지 못하는 그들의 현실을 바로 보게 함으로써 소수자들을 우리의 진정한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한 사고의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당신도 소수자다
이 책은 정보 전달보다는 우리의 편견에 도전하고 질문을 던진다. 소수자란 누구인가, 정상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사람들인가? 소수자와 다수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 기준은 합리적인가? 그리고 이러한 구분이 왜 차별로 이어지며, 나의 시각과 행동은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이 책은 우선 소수자와 다수자를 구분하는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남성과 대비되는 소수자인 여성은 장애인과 비교하면 비장애인이라는 다수자가 된다. 또한 사고 등으로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소수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수자와 소수자를 나누는 기준은 상대적임에도 우리는 이 기준이 절대적이며 자신은 결코 소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소수자라는 개념이 어디까지나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인식이 만들어낸 부당한 차별의 결과임을 깨우치기 위해 인종?민족적 소수자를 필두로 성적 소수자나 양심적 병역 거부자처럼 다원화 시대에 그 행보가 주목되는 소수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며, 그 차별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소수자들은 그러한 차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소수자를 통해 살펴본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지금 어느 정도인가. 마지막으로 그러한 차별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고 열린 시선으로 소수자와 소수자 문제를 바라볼 것을 기대하는 이 책은 소수자를 통해 우리 자신을 보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3. 한국 사회의 소수자
이 책의 제2장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 실태를 점검해본다. 소수자 하면 흔히 동남아 노동자나 장애인 정도를 떠올리지만, 한국 사회에는 알려지지 않은 소수자 집단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주 노동자보다 훨씬 전에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살아오고 있는 화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소수자가 된 양심적 병역 거부자나 성적 소수자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의 성격에 관한 논의는 다른 ‘전통적인’ 소수자(여성, 빈민, 장애인 등)와 달리 미완의 상태이며 차별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고 있다.
―백년손님 화교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살아왔으나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화교. 우리는 화교를 외국인으로 보아야 할까, 특별한 역사와 특징을 가진 영주자로 보아야 할까. 한국인 아니면 외국인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현재 한국 화교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저자는 이분법을 버리고 화교를 한국 사회 속의 소수민족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기존의 정책이 다양한 불이익을 가해 그들이 한국 땅을 떠나거나 귀화하게 강요했다면, 소수민족으로 보는 관점은 그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동화 정책으로 그들에게 ‘국민’되기를 강제하기보다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소수민족 ‘주민’으로 보는 것이다.
―절반의 한국인, 혼혈인
한국 사회에서 혼혈인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소위 ‘기지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다. 그들은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에 물든 한국인의 순혈주의 앞에서 냉대와 멸시의 대상으로 차별받아왔다. 현재는 그런 혼혈아 비율이 예전만큼 많지 않지만 혼혈인 2세, 3세는 계속 태어나고 있으며, 이주 노동자나 동남아 여성 등이 국내인과 가정을 이룬 결과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순혈주의에 사로잡혀 혼혈인들을 배척하기만 할 것인가?
―‘은밀한’ 권리만 누려야 하는 성적 소수자
성적 소수자, 그 중에서도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혐오, 일탈, 비정상’이다. 동성애자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동성애자에게는 사적 영역에서의 ‘은밀한’ 권리만 허용할 뿐 공적 영역에서는 그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라고 세금을 더 내는 일은 말도 안 된다면서 그들끼리의 결혼 허용에 대해서는 망설이고, 동성애자 커플의 아기 입양 문제에 이르면 그건 좀 그렇다는 반응을 보인다. 왜 우리는 다른 소수자들에게는 ‘인간의 권리를 보장’해주자면서 동성애자에게는 ‘동성애자의 권리를 허용’해주자고 하는 것일까?
―국방의 의무와 양심적 병역 거부
국방의 의무는 무조건 신성하며, 그것은 국민의 신념과 양심에 앞서는 것일까? 군대는 왜 존재하며, 군대에 가는 것은 왜 당연할까?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평화를 사랑하기에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것은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과 어떤 모순 관계일까?
한국에서는 매년 약 700명의 젊은이가 총을 드는 대신 감옥으로 향한다. 현재 징병제를 실시하는 96개국 가운데 30개국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며, 그 외의 국가도 르완다, 앙골라, 터키 등 6개국을 제외하고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감옥에 보내지 않는다. 저자는 국제 사회의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바라보는 우리의 좁은 시야를 비판하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사회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논한다.
4. 개인은 불쌍하나 집단은 불온하다―우리 사회의 이중 잣대
이 책은 2006년 한국 사회를 달군 하인스 워드 열풍과 다문화 사회를 찬양하는 담론의 이면을 보여준다. 혼혈인 다수가 우리 사회의 이방인 취급을 받는데도 우리는 대니얼 헤니, 하인스 워드 등 스타가 된 혼혈인만을 한국 사회의 ‘혼혈인 모델’로 인정한다. 또한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화교 학생들이 다니는 화교 학교에는 어떠한 재정적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일본에서 ‘민족 교육’을 고수하는 재일 동포들에게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한편 같은 소수자에게도 이러한 이중 잣대는 예외가 아니다. 동성애자 홍석천과 성전환자 하리수는 같은 성적 소수자임에도 한 명은 연예계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했고 한 명은 화려하게 등장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왜 그럴까? 흔히들 하리수가 예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리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인 예쁜 여자로 거듭난 사람이니 모든 것을 ‘용서’해준다는 것이다.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집에 사는 철거민 개개인은 불쌍하지만 재개발 반대 농성을 벌이는 철거민 집단은 불온하고, 사용자에게 구타당하고 몇 달치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는 불쌍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의 집단 농성은 불온하게 바라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시각이다. 이렇듯 편협하고 이중적인 잣대로 소수자와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한 우리 사회는 포용력 있고 관용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소수와 다수, 개인과 단체, 남성과 여성 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을 구분한 뒤 그들의 인권을 논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 모두를 똑같은 ‘우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5. 열린 문화 그러나 닫힌 사회
우리는 한국이 다른 나라와 달리 독특한 문화와 정서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외국 문화에는 개방적이다. 긴 시간에 걸친 중국 문화의 수용, 강제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본 문화의 수용, 최근에 한층 활발해진 미국 문화의 수용 등이 그러하다.
외국 문화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도 우리에게 고유의 문화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러한 수용이 우리 본질을 해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대로니까 남의 것이 주변을 맴돌아도 상관없다는 이런 자세는 진정한 혼용, 상호 침투, 공생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입으로는 다문화 사회 운운하면서도 사회의 본질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셈이다.
이런 ‘열린 문화―닫힌 사회’의 예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추방과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들을 위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나, 화교를 차별하고 냉대하면서 중국이나 홍콩 배우를 동경하는 것, 혼혈인에 대한 차별과 비하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얼짱’ 혼혈인 스타에 열광하는 것 등. 다문화 사회로 가자는 목소리는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문화에만 초점을 맞춘 채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는 다문화 사회 구호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문화의 존중과 사회적 차별의 철폐가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완성되고, 다수와 소수의 구분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